올해 2분기 전기요금이 결국 동결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0원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하며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최근 국제 유가와 LNG 가격이 하락하면서 연료비 부담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기요금 인하가 아닌 ‘동결’이라는 결정이 내려졌을까? 이번 결정의 배경엔 단순한 비용 구조 이상의 정치·경제적 셈법이 숨어 있다.
전기요금 동결, 총선과 물가 관리가 변수
전기요금 동결 결정은 단순히 한전의 적자 해소를 위한 전략이 아니다. 정치적 배경과 물가 관리 의지가 맞물려 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자극할 수 있는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특히 전기·가스 등 기초생활과 직결된 공공요금은 직접적인 민심과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사안이다.
또한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선 물가안정이 선행돼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은 곧바로 CPI(소비자물가지수)를 자극할 수 있어, 당국은 물가 상승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요금 동결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정치 일정과 통화정책, 물가 관리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한전 적자 누적, 요금 인하 여력도 부족
많은 이들이 "연료비가 내렸으니 전기요금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전력은 최근 수년 간 전기요금 억제로 인해 수십조 원의 적자를 누적해왔다.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 흑자는 일시적 요인에 불과하며 재무 구조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특히 한전은 노후 송전망 교체, 신재생에너지 전환 인프라 확대 등 중장기 투자 과제를 안고 있다. 요금을 낮춘다면 이 같은 인프라 투자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연료비는 낮아졌지만, 전력 수급을 안정화하고 미래 전력망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까지 감안하면 요금 인하는 여전히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 구조, 연료비만 보는 건 위험
이번 논란은 전기요금 결정 구조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도 반영된 결과다. 많은 소비자들은 전기요금이 단순히 유가와 가스값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전기요금에는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들은 단기 연료비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또한 전기요금은 에너지 전환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탄소중립을 향한 정부 로드맵 속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재정 확보가 필요하며, 이 역시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따라서 단기적인 연료비 하락만으로 전체 전기요금 인하를 기대하는 건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진짜 이유는 ‘정치와 구조’에 있다
이번 전기요금 동결은 단순히 "연료비가 내렸는데 왜 요금은 그대로야?"라는 의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연료비 하락이라는 단일 변수 외에도 정치적 일정(총선), 경제 정책 방향, 한국전력의 재정 상태, 통화 정책의 유연성 확보, 그리고 에너지 전환을 위한 중장기 투자 필요성까지 폭넓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한전은 지난 수년간 누적된 천문학적 적자와 미래 전력망 구축을 위한 투자 압박에 직면해 있어, 연료비가 다소 낮아졌다고 해도 당장 요금을 내릴 여력이 부족하다. 동시에 정부는 물가 상승 억제를 통한 경제 안정화와 국민 체감 경기 방어라는 목표 하에 전기요금을 조정하지 않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전기요금은 연료비 같은 단기 변수보다, 정책 방향성과 구조 개편 속도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가나 가스값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요금 체계 안에 포함된 다양한 비용 항목(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단가 등)과 한전의 재무구조, 국가 에너지 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전기요금은 더 이상 단순한 공공요금이 아니다. 이는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 수단이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재정 조정의 수단이다. 이번 동결은 국민에게 단지 ‘값’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정책적 의도와 구조적 현실을 읽는 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결국 이번 사례는 앞으로 반복될 수많은 공공요금 논쟁에서 경제적 판단과 정책적 정당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점으로 남을 것이다.